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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버린 梁沱水观音(양타수관음)이 말해주는 중국 내 불교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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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난 한주는 토요일 포함해 6일 동안 일했고 하루 쉬고 또 내리 밤 23-24시까지 일한 정말 피곤했던 한 주였다.


일주일 단 하루의 휴일

 


그래서 이번 토요일이 달콤한 코코넛처럼 느껴졌다. 두리안이 더 달콤한 것은 알고 있다. 다만 아직 제대로 먹어보지 않아서 표현에 사용할 수 없는 것이 한계.

그래서 일요일은 늦게 시작됐다.
전날 밤까지 도시를 돌아다니다가 호텔로 돌아와 잠든 탓에 눈을 뜨니 이미 오전 11시였다. 창밖을 보니 충칭 특유의 회색 하늘이 도시 위에 얇게 깔려 있었다. 흐리고, 약간 축축하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이 도시와 잘 어울렸다.

충칭은 원래부터 이런 이미지의 도시다. 예전부터 안개와 흐린 날씨로 유명해서 “무도(雾都, Wùdū)”, 즉 ‘안개의 도시’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이 도시는 맑고 시원하게 탁 트인 느낌보다, 강과 산, 안개와 콘크리트가 서로 얽혀 만들어내는 묘한 분위기가 더 어울린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직접 걸어보면 훨씬 더 강하게 느껴진다.




충칭이라는 도시를 압축해 놓은 시작점

 


이날의 출발점은 래플스시티 충칭(Raffles City Chongqing, 来福士广场 / Láifúshì Guǎngchǎng)이었다. 지난번 요거트 포스팅때 소개한 바가 있다.

래플스시티에는 가족화장실이 있다.
다려진 옷을 입고 나왔다
황형의 사진 센스
호텔에서 나올때 늘 물 하나를 들고
전시된 포르쉐 레고


이 건물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크거나 화려해서가 아니다.
여기 서 있으면 충칭이라는 도시가 왜 특별한지 한 번에 보인다. 바로 앞에서 **장강(长江)**과 **가릉강(嘉陵江)**이 만난다. 그래서 기대했지만, 그다지 선명하게 볼 순 없었다. 드론으로 하늘 위에서 보면 잘 보이려나.

오늘은 황수석님께 More Yogurt를 소개해준 것으로 여기서는 만족하기로 했다.

너무 맛있는 莫酸奶

이 글을 쓰는 현재 수많은 지점의 모어요거트를 마셔봤지만 충칭 래플스시티 지점이 최고였다.



강 건너편으로 가는 길

 

그날은 강 건너편으로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지도에서 발견한 장소가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도 묘했다. 梁沱水观音 (Liángtuó Shuǐ Guānyīn). 강변에 있는 관음상이라고 되어 있었고, 지도상으로는 꽤 흥미로운 지점처럼 보였다. 그래서 디디를 불렀다.

차가 도착했는데 운전기사는 젊은 여성 기사였다.
중국에서는 여성 디디 기사도 꽤 흔한 편이지만, 여전히 한국인 입장에서는 약간 신선하게 느껴진다. 충칭 도로를 달리는 짧은 시간 동안 창밖 풍경은 계속 바뀌었다. 다리를 올라갔다가, 터널로 빨려 들어가고, 또 어느 순간 전혀 다른 높이의 도로 위에 올라서 있었다. 충칭은 정말 ‘이동’ 자체가 관광이다. 가는 길만 봐도 도시가 평면이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梁沱水观音



梁沱水观音,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기억에 남은 장소.
도착한 梁沱水观音은 처음 느낌부터 묘했다.

처음엔 잘못 찾은 줄 알았다.
양타수관음 석판

이 석판은 지역 지자체의 표준 템플릿을 따르고 있어서 다음과 같이 표현 가능하겠다.

포맷

자 그럼 이런 석판으로 소개된 실제 내용은 어떤걸까

창살안에 보이는 저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화려하거나 웅장한 관광지의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용했고, 사람도 거의 없었고, 강변의 기운은 묘하게 을씨년스러웠다. 내가 느끼기엔 거의 유령의 집 입구에 잘못 들어온 수준이었다. 딱히 무서운 장치를 해놓은 것도 아닌데, 사람 없고, 오래된 느낌이 있고, 강변의 습기와 회색 하늘이 겹치니까 공간 전체가 약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막상 이런 장소가 중국에서는 아주 낯선 종류가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 특히 오래된 강변 도시나 산지 도시에 가면 이렇게 크지는 않지만 작게 작게 흩어진 종교 유적, 민간신앙 흔적, 석각, 사당, 성문 잔해 같은 것들이 의외로 많다. 충칭시가 공개한 강변 산책 행사 안내를 봐도, 강북 쪽 보행로가 梁沱水观音, 东升门, 保定门 같은 인문 유적들을 연결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즉, 여기가 대형 관광지가 아니라서 그렇지, 도시의 오래된 결을 보여주는 작은 인문 지점 중 하나라는 뜻이다.

양타수관음

한귝인 독음법에 의해 양타수관음이라고 읽었지만
1. 량퉈수관음(梁沱水观音)이란 무엇인가?
정의: 충칭시 장베이취(江北区) 장베이쭈이(江北嘴) 지역의 양쯔강변에 위치한 **절벽에 새겨진 관음보살상(마애불)**이다.
형태: 작은 사당 안에 모셔져 있지만, 실제로는 거대한 절벽 바위에 새겨진 형태이며, 과거 량퉈 지역의 지형적 특징인 **소용돌이(沱, 퉈)**가치는 거친 강물에서 유래한 이름.

진짜 궁금했을 이 질문
2. 왜 충칭에 이 불상이 있는 것인가?
충칭의 역사적, 지리적 배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지리적 요충지: 충칭은 양쯔강과 자링강이 만나는 곳으로, 과거부터 수상 교통과 운송의 핵심 거점이었다. 량퉈는 그중에서도 중요한 어항이자 **나루터(码头)**였다.
물의 위험: 과거에는 거친 강물, 홍수, 그리고 숨겨진 암초 등으로 인해 수많은 어부와 운송업자가 목숨을 잃었다. 량퉈라는 이름 자체가 거친 물결과 관련이 있을 정도로 배들이 지나가기 위험한 구간이었다.
수호신의 필요성: 이 거칠고 위험한 물길에서 매일 삶을 꾸려가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정신적인 의지처가 절실했다. 사람들은 물의 위험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줄 수호신으로 관음보살을 모시게 되었다.
역사적 역할: 어부나 선원들은 배를 타고 강으로 나가기 전에 반드시 이 수관음 앞에 와서 향을 피우고 절을 하며 무사고와 풍어, 안전한 귀환을 기원했다.




왜 중국에는 이런 작은 불교 흔적들이 많은가

 

불교가 중국에서 차지한 자리와 그 배경

여기서 한 가지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왜 중국에는 이런 식의 작은 관음상, 강변 불상, 절벽 조각, 동네 사당 같은 것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을까.

나루터

배경을 알면 조금 이해가 된다.

불교는 대체로 1세기 무렵 한나라 시기,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에 들어온 것으로 본다. 중국에 들어온 뒤 초기에 빠르게 자리를 잡은 이유 중 하나는, 당시 중국 사회에서 이미 널리 퍼져 있던 도교적 민간신앙과 어느 정도 접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브리태니커는 초기 중국 불교가 마술적 실천과 민간적 요소를 띠며 중국의 대중 종교 문화와 쉽게 맞물렸다고 설명한다.

그 뒤 중국에서 불교가 크게 퍼진 시기는 한나라 말 이후의 혼란기와 육조시대였다. 정치 질서가 흔들리고 전쟁과 분열이 이어지자, 사람들은 윤회, 구원, 공덕, 내세 같은 불교적 설명에 더 쉽게 끌렸다. 브리태니커도 이 시기에 불교가 ‘대중 종교’로 크게 성장했다고 설명한다.

래플스 시티가 저멀리 보인다.

그런데 중국에서의 불교는 인도 불교가 그대로 들어와 유지된 것이 아니었다.
중국 사회 안으로 들어오면서 유교, 도교, 불교가 섞이는 삼교합일(三教合一, sān jiào hé yī) 흐름 속에서 점점 중국식으로 변했다. 유교는 사회윤리와 질서를, 도교는 자연과 길흉화복, 민간신앙의 실천을, 불교는 업보와 내세, 자비와 구원의 세계관을 제공했다. 그래서 중국의 종교 공간은 거대한 사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활세계 곳곳에 작게 흩어진 신앙 흔적들이 남는다. 관음상, 성황묘, 산신 제단, 절벽 조각, 사당 같은 것들이다.

엄청나게 잦게 화물선이 다니는 걸 볼수 있다.
왜 이렇게 이런 곳이 좋은지 모르겠다.

 
특히 **관음(观音, Guānyīn)**이 중국에서 유독 강한 존재감을 갖게 된 것도 중요하다.
관음은 중국에서 매우 대중적인 자비의 상징이 되었고, 바다나 강, 산길, 출산, 재난, 안전 같은 일상적 염원과 쉽게 연결됐다. 그러니 강변 도시 충칭에서 작은 관음상 하나가 남아 있다는 건, 오히려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배를 타고 오가던 사람들, 강변 마을에서 살던 사람들, 위험한 길을 오르내리던 사람들이 이런 존재에 마음을 걸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래서 梁沱水观音을 보면, “왜 이렇게 초라하지?”라는 느낌과 동시에 “이런 게 중국이다”라는 생각도 든다.
중국의 불교는 언제나 거대한 석굴과 유명 사찰만으로 존재한 게 아니라, 생활 한복판의 작은 신앙 흔적으로도 살아 있었으니까.

바다위에 떠있다.

 
강가 근처로 선책해봤다. 관광지라기보다 산책길에 남은 오래된 흔적..
이날 이 장소는 화려한 감탄 대신 약간의 황당함으로 기억됐다.
“이렇게까지 조용하고,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없을 줄은 몰랐다.”
그런데 또 그런 순간이 여행을 더 진짜처럼 만들어준다. 멋진 풍경만 남는 여행보다, 약간 허무하고 약간 웃기고 약간 낯선 기억이 섞인 여행이 결국 더 오래 남는다.



질서라는 이름의 문화 차이

 

충칭 지하철에서 본, 질서라는 이름의 문화 차이
강변을 둘러보고 부슬부슬 비를 맞고 있는데 슈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집에 놀러오라는 것. 그러기로하고 지하철을 타러 갔다.

지하철 경로

그리고 여기서 꽤 강렬한 장면을 하나 보게 됐다.

나는 승강장에서 줄 맨 앞에 서 있었다.
곧 지하철이 들어올 분위기였고, 자연스럽게 ‘앞에서 기다리다가 내리는 사람들 다 내리면 타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너무 당연한 흐름이다.

그런데 내 앞에서 한 어린 남자아이가 계속 알짱거렸다.
옆에는 그 아이의 할아버지, 할머니로 보이는 어른들이 함께 있었는데, 아이를 말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순간, 그 아이는 사람들이 다 내리기도 전에 먼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더 웃긴 건 그 뒤였다. 아이가 뚫고 들어간 틈을 타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그대로 따라 들어가 버린 것이다.

결국 나는 줄 맨 앞에 서 있었지만, 가장 늦게 탔다.

그 순간은 솔직히 꽤 짜증이 났다.
그리고 그 짜증은 단순히 “새치기당했다” 수준이 아니라, 내가 익숙한 질서감이 통하지 않는 공간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아주 생생하게 체감하게 해 줬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이것도 하나의 중국 경험이었다.
중국에서는 이런 상황을 설명할 때 종종 “不抢就没位置 (bù qiǎng jiù méi wèizhì)”, 즉 “안 뺏으면 자리가 없다” 같은 식의 현실 감각으로 말하곤 한다. 물론 모든 중국인이 다 그런 건 아니고, 중국인들도 이런 행동을 보고 “没素质 (méi sùzhì)”, 즉 매너 없다고 욕한다. 하지만 대도시의 혼잡한 공간에서는 여전히 ‘먼저 들어가고 보자’는 식의 행동이 생각보다 자주 나온다.

여행에서는 명소보다 이런 장면이 더 오래 남기도 한다.
도시의 야경보다도, 한 나라 사람들의 생활 습관이 훨씬 더 직접적으로 기억에 남을 때가 있다.


两江新区, 충칭의 또 다른 얼굴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이동한 곳은 **两江新区 (Liǎngjiāng Xīnqū)**였다.

충칭의 신도시라고 보면 된다. 오래된 산성(山城) 이미지의 충칭과는 조금 다른 얼굴을 가진 지역이다. 길이 더 넓고, 아파트 단지는 더 새롭고, 도시 전체의 결이 훨씬 계획적이다.

슈아이의 아파트 당지

여기서 충칭에 사는 지인 **슈아이(周帅, Zhōu Shuài)**를 만났다.

도착한 아파트 단지는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슈아이와 집으로 가는 길
고급 맨션


단지가 넓고, 조경이 잘 되어 있고, 무엇보다 수영장까지 있는 고급 주거단지였다. 중국의 대도시에서는 이런 중상급 이상 단지가 종종 보이지만, 실제로 들어가 보면 체감이 다르다. 외부의 복잡한 도시 풍경과 다르게 단지 안은 아주 정돈되어 있고 조용했다.

집에서도 인상적인 장면이 이어졌다.

하얀 딸기
슈아이가 내준 차의 이름


차를 내주고, 과일을 내주고, 천천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 중국에서는 이런 손님맞이가 꽤 자연스럽다. “喝茶聊天 (hē chá liáotiān)”,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집 방문의 핵심처럼 느껴진다. 중국의 고급 아파트 문화와, 여전히 남아 있는 차 중심의 접객 문화가 한 공간에 묘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충칭 중앙 공원

 
 
차를 마신 뒤 마주한, 믿기 어려울 정도로 큰 공원
 
슈아이와 차를 마신 뒤에는 집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그런데 이 공원이 생각보다 훨씬 더 컸다. 처음에는 그냥 동네 공원이겠거니 했는데, 걷다 보니 규모감이 점점 이상해졌다. ‘왜 끝이 안 나오지?’ 싶을 정도로 넓었다.

벚꽃이 필 때
충칭 중앙공원 이미지


나중에 체감상 비교해 보면 대략 이렇다.
부천 중앙공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넓고, 광교호수공원보다는 조금 작지만 충분히 큰 규모, 인천대공원보다는 작지만 동네 공원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수준. 그러니까 쉽게 말해 **“개에에에에 넓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했다.

이런 대형 공원이 도시 안에 있다는 건, 两江新区가 어떤 지역인지도 보여준다.
오래된 충칭 중심부가 빽빽한 골목과 계단과 언덕으로 기억된다면, 이쪽은 훨씬 신도시답게 넓고 계획적이다. 단지와 공원, 도로와 조경이 한 세트처럼 붙어 있다.

그리고 그 산책은 꽤 좋았다.
일정을 소화하는 관광이라기보다, 그냥 누군가의 동네를 걷는 느낌. 여행에서 그런 순간은 이상하게 더 오래 남는다. 유명한 곳을 찍고 지나가는 시간보다, 누군가가 실제로 살고 있는 지역의 공기와 속도를 잠깐 공유하는 시간이 더 진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马房昌焖烧鸡

 

저녁 식사, 그리고 하루가 점점 충칭의 생활 쪽으로 기울어가던 시간

산책을 마친 뒤에는 저녁을 먹었다.

马房昌焖烧鸡
(pinyin: Mǎfángchāng mènshāo jī)
→ 마팡창 스타일 닭 조림

1948山城非遗菜
(pinyin: shānchéng fēiyí cài)
→ 충칭 무형문화유산 요리

맛은 특이하진 않았고, 닭도리탕과 죽순을 함께 먹어서 맛있는 느낌이었다.

원장맥주
하오무 원장맥주

이 원장맥주 말을 안할수가 없다.

小麦原浆精酿啤酒
→ 밀 원액 크래프트 맥주
xiǎomài yuánjiāng jīngniàng píjiǔ

德国风味 香浓醇厚
→ 독일 스타일, 향 진하고 바디감 있음
déguó fēngwèi, xiāng nóng chún hòu

无任何添加剂
→ 첨가물 없음

나는 중국 맥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 맥주는 유일하게 달랐다. 밀맥주의 고소함과 약간의 깊이감이 찾아왔다.

그리고 충칭 음식은 여전히 강했다. 맵고, 향이 세고, 기름지고, 얼얼하다. 사천요리 문화권답게 **화자오(花椒)**의 마라감이 분명했고, 입안에 남는 향이 뚜렷했다.

하지만 이런 음식은 이상하게 계속 먹게 된다.
처음에는 “와 너무 센데?” 싶은데, 몇 입 지나면 그 매운맛과 향의 구조를 조금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쯤 되면 이미 젓가락이 멈추지 않는다.

그날의 식사는 단순히 맛있었다는 것 이상으로,
충칭의 생활권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간 느낌을 줬다. 관광객이 가는 식당이 아니라, 실제로 여기 사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데려가는 식사. 그런 자리에서는 음식 자체보다도, 그 음식이 놓인 맥락이 더 인상적으로 남는다.

슈아이, 하오, 홀란D

 
 


하루를 마무리하며

 

호텔로 돌아와 하루를 정리하듯 마신 1.5리터 밀맥주

하루의 마지막은 다시 호텔이었다.
씻고, 창가에 앉고, 도시를 내려다봤다. 충칭의 밤은 낮보다 더 충칭답다. 산 위에 쌓인 건물들이 층층이 불을 켜고, 강 위에는 빛이 반사되고, 다리는 그 자체로 또 다른 도시 구조물처럼 떠 있다.

그런데 그 밤에 갑자기 밀맥주가 당겼다.

그래서 메이투안을 켜고 생맥주 1.5리터를 주문했다.
중국식으로 봉지에 담겨 오는 배달 생맥이었다. 감성은 확실히 있었다. 비 오는 밤, 충칭의 야경, 호텔 창가, 프리미어리그 중계, 그리고 밀맥주 한 봉지. 그림은 완벽했다.

무게에 주목

이렇게 포장해서 보내겠다고 사진이 왔다. 

새벽 한시 배송
말도 안되는 거리

새벽한시에 저 거리를 저 시간을 들여서 온다는게 참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저녁 맥주 라인업

다만 맛은 조금 아쉬웠다.
밀맥주이긴 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바디가 많이 가볍고, 묽은 느낌이 있었다. 중국 배달 생맥이 가진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현장에서 마시는 생맥과 달리 배달용 봉지 생맥은 탄산과 향이 쉽게 빠지고, 특히 밀맥 계열은 기대한 효모감과 두께감이 약해질 수 있다.

2시간 내에 마실것

그래도 그 한 잔은 하루의 마지막 장면으로는 이상하게 잘 맞았다.
최고의 맥주라서가 아니라, 그날 충칭에서 내가 봤던 모든 장면들. 래플스시티, 유령의 집 같던 梁沱水观音, 지하철의 무례한 꼬마, 슈아이의 고급 아파트, 공원의 넓이, 저녁 식사, 그리고 창밖의 도시. 그런 것들을 한꺼번에 천천히 정리하게 해주는 술이었다.

충칭은 결국, 화려한 랜드마크보다 ‘사이의 장면’이 기억에 남는 도시였다

맥주 따랐을떄의 뷰


돌이켜보면 이 날은 관광 명소를 잔뜩 찍은 하루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충칭답게 남았다.

래플스시티 같은 거대한 랜드마크도 있었고, 梁沱水观音 같은 작고 스산한 장소도 있었다.
질서감이 무너지는 지하철 장면도 있었고, 차를 내어주는 친구의 집도 있었다.
신도시의 고급 주거단지와, 그 안의 거대한 공원도 걸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호텔 창가에서 밀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닫았다.

충칭은 화려한 도시다. 그런데 그 화려함은 언제나 삐끗한 현실감과 함께 온다.
웅장한 강과 빌딩 바로 옆에 오래된 종교 흔적이 남아 있고, 고급 아파트에서 차를 마시고 나온 뒤 지하철에서는 또 전혀 다른 질서를 목격하게 된다.

아마 그래서 이 도시가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된 도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과 계층과 감정이 입체적으로 겹쳐 있는 도시.

충칭은 그런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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