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세번째 출장이다.

이슈대응이기 때문에 호텔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많은데, 이런 내 처지가 터미널에 갇혀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야기로 알고있는 이 영화 '터미널'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고 찾아봤다.

아아 오랜만에 보는 탐행크스형!


2004년 영화인데 11년 후에 봐서 미안해.

혼잡한 공항에서 단박에 입국거부를 당해버린다. 영어도 전혀 못 쓰는 단계의 빅터 나보스키. 출입국 관리자 대머리형(프랭크 딕슨)한테 입국도 시켜줄 수 없고, 그롷다고 돌려보낼수도 없다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그리고 상황이 반전될 때까지 공항 터미널에서의 삶을 제안받는데..

일단 그가 쓸 수 있는 돈이 없다. 잘 수있는 곳도 없다. 그래서 나보스키는 67번 게이트를 자신의 거처로 사용하게 된다. 크래커로 버거킹의 무료 케찹과 머스터드로 연명을 하다가 그 나름의 방법으로 하나둘씩 역경을 헤쳐나간다. 돈이 궁했던 나보스키가 우연히 공항내 카트를 반납해 보증금 동전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엄청나게 카트를 수집한다. 이 장면이 가장 웃겼는데, 공항 직원들과 시큐리티들이 CCTV를 통해 팔짱끼고 그 장면을 보면서 "나보스키가 돈 버는 법을 깨우쳤어요!" 라고 말하는 장면.

ㅋㅋㅋㅋ 아 진짜 나쁜 사람들 ㅋㅋㅋㅋ
마치 어린아이처럼 나보스키는 신이나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버거킹 버거를 엄청 사먹는다.
그 와중에도 미국 출입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데, 자신의 출입국 서류를 들고 계속해서 흑인직원을 찾아가서 거절 도장을 받는다.

공항에서 계속 살다보니 필연적으로 자주보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하늘의 꽃, 여승무원들이다. 정말 예쁜 사람이 나와서 넋을 빼고 봤는데, 알고보니 케서린 제타존스!


나보스키도 나처럼 그녀에게 빠져버린다. 처음엔 간단한 대화뿐이었지만 정복의 역사를 좋아하는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통해 점점 친해지고 그렇게 러브라인을 형성한다.

바닥을 미끄럽게 만들어놓고 경고문을 세워놓지만 그걸 무시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넘어지는 것을 즐긴다는 청소부 굽타, 출입국실의 흑인누나를 좋아하는 케더링 직원 엔리케, 도박을 즐겨하는 아저씨까지.. 조연들이 각자 캐릭터를 갖고 살아 숨쉰다. 이들은 후에 나보스키와 승무원 아멜리아의 사랑을 돕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영화는 마냥 즐거운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데, 자신의 승진과 안위를 위해 골칫거리 나보스키를 내보내려는 딕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카트를 이용해서 돈을 버는 나보스키의 일자리를 뺏는가하면, 독방에 격리를 시키기도 한다. 자신이 감사를 받는 날 하필이면 사고를 일으킨 유럽동부권 남자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보스키를 불러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결과는 매우 안좋았는데, 나보스키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고 공항 노동자들의 친구로 발돋움하게 되고 나보스키에게 보복하는 장면을 딱 들킨 딕슨 자신은 진급이 누락되는 결과를 낳았다.

사람이 자라면서, 생각과 가치관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나는 그걸 실감했다. 내가 이 영화가 나왔던 11년 전에 봤다면 분명히 딕슨은 그저그런 악역으로만 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시각으로 본 그는 그저 해야만 하는 일을 한 관리직으로 보인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나는 그렇게 행동했을까? 그건 모르는 일이다. 어찌됐던 딕슨 입장에서 보면 세상일 참 맘대로 되는 것 하나 없다.

나보스키의 사랑은 쉽지 않았다. 가정이 있는 남자와 불륜중이던 아멜리아는 나보스키와 잠깐의 외도를 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그에게 되돌아 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나보스키와의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녀에게 나보스키는 어떤 남자였을까? 어쩌면 터미널 같은 남자가 아니었을까?

우리에게 터미널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봤다. 터미널은 한쪽에서 다른쪽을 연결하는 통로로써 기능한다. 우리중 누구도 터미널을 행선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목적지를 향해 갈때 거쳐가야 하는 곳. 그곳에서 시간을 소비할 수 있지만 그것을 최소화하고 싶은 것이 모두의 생각일 것이다. 거쳐가는 곳. 그것이 터미널의 본질, 속성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참 슬픈 존재다. 자체가 목적이 되지 못하는 존재 터미널.

그러나 그것은 나보스키에게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아버지와의 약속을 상징하는 땅콩캔을 들고 그는 뉴욕에 가기위해 노력하지만 몸은 터미널에 있어야했다. 터미널에서 줄곧 그녀를 기다렸다는 나보스키는 그가 몸담고 있는 터미널의 '일시적'이라는 속성처럼 결국은 그녀와 이뤄질 수 없었고, 일상으로 돌아간 그녀는 마지막으로 나보스키에게 남친의 힘을 빌려 하루짜리 미국입국 비자를 받아다준다.

그의 본국인 크라코지아의 내전은 끝이 났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컬렉션을 완성하기 위해 결국은 9개월의 체류를 마치고 그는 뉴욕땅에 발을 내딛는다. 딕슨은 그것을 막아보려하지만, 그를 위해 여러사람이 희생하는 것을 보고 그 자신도 알수없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보내준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나보스키. 어디로 가냐는 택시기사의 말에 홀가분해진 그는 답한다.

"Home"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때가 되어서야 알았지만 터미널이 무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였다니!
전통적인 악당이 없고 휴머니즘을 강조한 (요즘 기준으로는 다소 심심한) 것을 기억하고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탐 행크스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올해 Bridge of Spies 란 영화로 돌아온다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개봉하면 꼭 찾아봐야지.

크라코지아의 내전이 종료됐다는 반가운 뉴스에 이어서 나의 출장이 조기 복귀로 결론났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나에겐 터미널 같았던 광저우의 이 숙소를 이제는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호텔은 호텔일뿐 내 집이 아니니까. 이제는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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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펠

1차 목표를 이룬, 이제는 다가올 기회에 대비하는 나 그리고 나의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