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오해를 풀자면, 제목 잡동사니 늘어놓기라는 표현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 대한 내 평가가 아니다. 나의 '나의 글'에 대한 자평이라고나 할까.


원제는 HENKYO, KINKYO. 즉 변경(辺境), 근경(近境).

아주 멀고 낯선 곳과 가까운 부근의 일대를 말한다.

검색해서 알게 되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스스로 에세이의 제목을 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위의 멋진 제목도 스스로 정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좋은 제목이라는 생각이다. 


이걸 우리나라에서는 -비록 아주 오래전의 일이지만- 

무려 세계적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 : 여행하면서 쓰고, 쓰면서 여행하는 벅찬 즐거움

이라고 하다니!

생각의 여지를 싹둑! 잘라버렸다.

하지만 제목이 저런 덕분에 내가 책을 사게 되었으니, 고맙다고해야하는건가. 아이러니.


미국 여행을 계획하면서 현정이와 서점에 갔다. 마션을 사서 비행기에서 읽으면서 갈까 생각했을 때, 이 책을 발견하고 사버렸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 발견한 (하루키의) 여행책!

운명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에서도 읽고 여행 중간중간에도 읽었다.

책은 

이스트햄프턴

무인도 까마귀 섬 (일본의)

멕시코 대여행

우동 맛기행

노몬한

아메리카 대륙 횡단

걸어서 고베까지

의 일곱 꼭지로 되어있었다. 이중 마지막 일곱번째 꼭지를 제외하고는 여행지에서 다 읽었다. 

적지않게 내 여행에 영향을 끼친 책이다. 



인상깊은 구절을 몇개 소개한다. 

2. 나 스스로 녹음기가 되고 카메라가 되는 자세로


나는 실제로 여행하는 동안에는 별로 세밀하게 글자로 기록을 하지 않는다. 대신 작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때그때 짤막하게 적어 놓을 뿐이다.

(중략)

어쨌든 그때그때 눈앞의 모든 풍경에 나 자신을 몰입시키려한다. 모든 것이 피부에 스며들게 한다. 나 자신이 그 자리에서 녹음기가 되고 카메라가 된다. 내 경험으로 보건대, 그렇게 하는 쪽이 나중에 글을 쓸 때도 훨씬 도움이 된다. 반대로 말한다면, 일일이 사진을 보지 않으면 모습이나 형태가 생각나지 않는 경우에는 살아있는 글이 나오지 않는다.


이번 미국여행에선 운전을 하다 지쳐서 길가에서 잠이들고,깨서 다시 운전하고, 다시 정지해서 자고 이런 시간들이 반복됐었다. 이런 종류의 피곤함은 미국에서밖에 할 수 없겠지.라는 생각을 아래 구절을 읽고 책에 메모해두었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독일에는 독일 나름대로의 피곤이 있다. 인도에는 인도, 뉴저지에는 뉴져지 나름대로의 피곤이 있다. 하지만 멕시코에서의 피곤은 멕시코에서밖에 얻을 수 없는 종류의 피곤인 것이다. 

격한 공감은 계속되었다. 


'노몬한 전투'라는 역사적 사건에 이상하게 끌렸다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미국에 살면서 대학의 도서관을 목표도 없이 어슬렁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인간들이 때때로 '묘한 곳에서 묘한 것과 부딪치는 법이듯, 노몬한 전투에 대한 책을 찾아서 읽고 결국 노몬한의 싸움터를 찾아가보게 되기에 이른다. 


이번 내 여행도, 감명깊게 본 영화 한편에서 시작 된 것이 아니었던가?



시카고를 빠져나와 위스콘신주로 들어가면서부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종류가 완전히 달라졌다. 컨트리 음악 프로그램이 압도적으로 많아지고, 재즈나 랩은 카스테레오의 서치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들을 수 없었다. 덕분에 나는 본의 아니게 컨트리 음악의 유행 상황에 꽤 정통하게 되었다. 


이 부분에서는 웃을 수 밖에 없었는데, 책을 읽을 당시 미국 횡단(?)여행중인 나의 처지와 상황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여행도중에 특별히 하고 싶은 일도 생각나지 않아서, 거리로 나가 눈에 띄는 적당한 영화를 보고,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는 자평을 하면서 나와 이번엔 근처 작은 레스토랑까지 가서 혼자 저녁을 먹는 하루키의 모습은 이번 여행중의 나에게 묘한 안도감 비슷한 감정을 주었다. 
'대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나와 같은 여행을 했어'

'나 혼자 이런 또라이같은 여행을 하는게 아니야' 

라는 안도감이었다. 


이런 공감을 많이 얻었었다. 

책을 음미하고 나서 내 블로그의 글들을 읽어보았다. 영감도 한번 말하지 않았던가, '자연스럽지 못하다'라고.


하루키가 힘들여 쓰지 않은듯 쓴 여행기를 나는 지레 겁먹고 어깨에 힘을 잔뜩 실은채로 쓰려고 하고 있었다. 


이거야말로 '잡동사니 늘어놓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나.


하루키의 표현을 몇개 빌려서 차용하는 것으로 나도 '자연스러운' 여행기를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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